한 손의 음악 - 부상과 제약이 바꾼 클래식의 소리

2026-09-21문종인의 소리 질감문종인
한 손의 음악 - 부상과 제약이 바꾼 클래식의 소리

저는 음악가치고 자전거를 꽤 많이 탑니다. 자전거에 짐을 싣고 오래 달리다 보면 머릿속이 비워지고, 공연이나 곡에 관한 생각이 엉뚱한 순간에 정리되곤 해서 시간이 나면 여행을 떠나는 편입니다.

그러다 얼마 전 낙차로 갈비뼈를 다쳤고, 몸을 추스르던 중 이번에는 왼손 가운데손가락의 힘줄까지 다쳐 한동안 피아노를 제대로 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작곡과 편곡은 느리게나마 계속할 수 있었지만, 예정했던 연주들은 취소되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못 치게 되니 오히려 더 치고 싶어졌다는 것입니다. 연주를 쉬는 동안 피아노를 향한 갈망이 이상할 만큼 커졌습니다.

그러다 문득 라벨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이 떠올랐습니다.

이 작품은 라벨이 손을 다친 친구를 위해 쓴 곡은 아닙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오른팔을 잃은 오스트리아 피아니스트 파울 비트겐슈타인이 위촉한 작품입니다.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형이기도 한 그는 전쟁 뒤에도 연주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당대 작곡가들에게 왼손만을 위한 작품을 적극적으로 의뢰했습니다.

미국 의회도서관이 소장한 그의 자료에 따르면, 비트겐슈타인이 위촉한 왼손용 실내악과 협주곡은 30곡이 넘습니다. 라벨뿐 아니라 프로코피예프, 코른골트, 브리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 여러 작곡가가 작품을 썼습니다.

한 연주자의 신체적 조건이 20세기 피아노 음악에 독특한 레퍼토리를 남기게 된 셈입니다.

라벨의 협주곡은 ‘한 손으로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묘기 이상의 작품입니다.

라벨은 이 곡을 쓸 때 두 손을 위한 피아노 파트보다 소리의 질감이 가볍게 느껴져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직접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독주자는 낮은 베이스에서 높은 선율까지 건반의 넓은 거리를 빠르게 오가며 선율과 반주, 화음의 여러 층을 한 손으로 만들어냅니다.

눈을 감고 들으면 가장 재미있는 질문은 이것일지도 모릅니다.

“언제까지 한 손이라는 사실을 잊고 들을 수 있을까?”

한 손이라는 제한을 감추는 동시에, 바로 그 제한 때문에 생겨난 커다란 도약과 음역의 간격이 이 작품 특유의 질감을 만듭니다.

막상 제가 왼손을 쓰지 못하게 되니 반대의 궁금증도 생겼습니다.

왼손을 위한 작품은 익숙한데, 왜 오른손만을 위한 작품은 상대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을까요?

물론 오른손만으로 연주하는 피아노곡도 존재합니다. 한 손 피아노 레퍼토리를 정리한 전문 문헌에는 오른손 전용 작품들도 별도의 항목으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다만 20세기에 왼손을 위한 중요한 협주곡과 실내악이 집중적으로 탄생하는 데에는 비트겐슈타인의 위촉이 결정적인 역사적 계기 중 하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재력과 연주 활동을 바탕으로 당시의 주요 작곡가들에게 새로운 작품을 계속 요청했습니다.

손의 구조에 관한 흥미로운 설명도 있습니다.

오랫동안 오른손을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해 왼손 레퍼토리를 연주했던 피아니스트 레온 플라이셔는, 왼손에서는 엄지가 높은 음역 쪽에 있기 때문에 엄지로 선율을 내고 나머지 손가락으로 아래의 화성과 반주를 맡기는 데 유리한 면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것이 왼손 레퍼토리가 탄생한 이유를 모두 설명하는 법칙은 아닙니다. 다만 피아노라는 악기에서 한 손이 어떻게 여러 성부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흥미로운 관찰입니다.

작곡가 자신이 손을 다친 뒤 탄생한 음악도 있습니다.

알렉산드르 스크랴빈은 모스크바 음악원 학생 시절 리스트의 〈돈 조반니의 회상〉과 발라키레프의 〈이슬라메이〉를 과도하게 연습하다 오른손을 다쳤습니다. 특히 〈이슬라메이〉는 오늘날에도 피아노 레퍼토리에서 대표적인 난곡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작품입니다.

부상의 영향은 몇 년 동안 이어졌고, 이 시기에 〈왼손을 위한 전주곡과 녹턴〉 Op. 9이 만들어졌습니다.

특히 녹턴을 들어보면 ‘한 손’보다 ‘여러 층’이 먼저 들립니다.

높은 성부의 선율을 엄지가 노래하는 동안 다른 손가락들이 그 아래에서 화성을 만들고, 같은 손에서 나온 음들이 서로 다른 거리에 놓여 있는 것처럼 분리됩니다.

지난 칼럼들에서 계속 이야기해온 ‘소리의 질감’은 바로 이런 곳에서도 생깁니다.

몇 개의 음을 칠 수 있는가보다, 같은 다섯 손가락이 얼마나 서로 다른 앞뒤와 높낮이, 무게를 만들어내는가를 듣는 것입니다.

제약의 이야기를 조금 더 멀리 가져가면 올리비에 메시앙의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를 만나게 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에 포로가 된 메시앙은 실레지아의 포로수용소 Stalag VIII-A에서 이 작품을 작곡했습니다. 당시 수용소에 있던 연주자와 사용할 수 있었던 악기에 맞춰 바이올린, 클라리넷, 첼로, 피아노라는 편성이 만들어졌고, 메시앙 자신이 피아노를 맡아 1941년 1월 15일 수용소에서 초연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이 네 악기를 항상 함께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3악장 ‘새들의 심연’은 클라리넷 독주입니다. 5악장은 첼로와 피아노, 마지막 8악장은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음악입니다. 반대로 6악장에서는 네 악기가 유니즌으로 움직이며 마치 하나의 거대한 악기처럼 들립니다.

주어진 네 악기로 기존의 현악사중주 같은 균질한 소리를 흉내 낸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조합에서만 생길 수 있는 밀도와 빈 공간을 작품의 일부로 만든 것입니다.

라벨, 스크랴빈, 메시앙의 상황은 서로 전혀 다릅니다.

전쟁에서 팔을 잃은 연주자의 위촉, 연습 중 생긴 작곡가 자신의 부상, 포로수용소라는 극단적인 환경을 하나로 묶어 “고난이 위대한 예술을 만든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게 낭만적인 해석일 것입니다.

고통은 그냥 고통일 때가 훨씬 많습니다.

다만 이 음악들에는 공통적으로 들어볼 만한 지점이 있습니다.

주어진 조건을 지우려 하기보다, 그 조건 자체를 음악의 구조와 질감으로 바꾸었다는 것입니다.

한 손밖에 사용할 수 없다면 한 손에서 여러 층의 소리를 만들고, 네 악기가 주어졌다면 그 네 악기 사이의 빈 공간까지 음악으로 만들었습니다.

제 손이 다친 뒤 이런 작품들을 다시 찾아 듣게 된 것도 아마 그래서였던 것 같습니다.

피아노를 쉬는 시간은 여전히 답답하지만, 이상하게도 음악을 듣고 만들고 싶은 마음은 전보다 더 커졌습니다. 손이 자유롭지 않으니 오히려 지금 할 수 있는 소리가 무엇인지 더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이번 글은 〈문종인의 소리 질감〉의 예정된 길에서 잠시 벗어난 번외편입니다.

하지만 음악을 듣는 방법이라는 점에서는 그리 멀리 온 것도 아닌 듯합니다.

다음에 한 손을 위한 음악이나 조금 낯선 편성의 작품을 만난다면 ‘무엇이 부족한가’를 찾기보다 이렇게 들어보셔도 좋겠습니다.

“이 제한 때문에 새로 생겨난 소리는 무엇일까?”

뜻대로 되지 않는 시간을 굳이 아름답게 포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도 그 안에서 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다른 방법 하나가 생겨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저도 재활하는 동안 그 방법을 조금 찾아보려 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지난번에 예고했던 길로 돌아가겠습니다. 클래식 음악이 영화와 화면을 만났을 때, 같은 음악이 어떻게 전혀 다른 감정과 기억으로 남게 되는지 들어보려 합니다.


[작은 감상 제안]

Maurice Ravel — Piano Concerto for the Left Hand

처음에는 ‘한 손’이라는 사실을 잊고 들어보세요.

그러다 피아노가 베이스와 선율, 화음을 동시에 만들어내는 순간, 왼손 하나가 건반 위에서 얼마나 먼 거리를 오가고 있을지 상상해보시면 좋겠습니다.

감상: https://youtu.be/jWBgJZZTBaA?si=mGPBmlCSqRCTkIeX

Alexander Scriabin — Prelude and Nocturne for the Left Hand, Op. 9

높은 음역의 선율과 그 아래의 반주가 얼마나 서로 다른 거리에서 들리는지 들어보세요.

하나의 손에서 나온 소리가 두 사람의 대화처럼 분리되어 들리는 순간을 찾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감상: https://youtu.be/R6Ty22blCiA?si=5mhWIsgF7hZ2YWSp

Olivier Messiaen — Quartet for the End of Time

악기 이름을 하나씩 따라가기보다 소리의 밀도가 어떻게 바뀌는지 먼저 들어보세요.

하나의 악기만 남았을 때 생기는 빈 공간과, 네 악기가 유니즌으로 겹쳤을 때 갑자기 두꺼워지는 소리를 비교해보셔도 좋겠습니다.

감상: https://youtu.be/QAQmZvxVffY?si=8VnPLGNnSZZ5WGG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