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와 춤을 따라 다시, 섬으로

2026-09-08Tala 섬의 이야기현혜원
파도와 춤을 따라 다시, 섬으로

 하늘을 보았다. 빛과 구름만을 가지고 저렇게 매번 아름다울 수 있다니. 평소처럼 감탄을 내뱉으며 주위를 둘러본다. 이곳은 제주. 태어나고 자란 곳이지만 성인이 된 후로 쭉 육지에서 지냈기에, 영혼과는 가깝게, 머리와는 낯설게 느껴지는 곳. 이곳에 돌아온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인간은 가끔 현재의 나의 성향과 모습, 상황과 환경이 평생 갈 것이라 착각하곤 한다. 그로 인해 아주 작게는 1+1 이벤트 중인 화장품을 계속 쓸 것처럼 여러 개 사거나, 크게는 이사 갈 일이 없을 거라며 판매 시점의 가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집을 매매하기도 한다. 그러다 문득 나처럼 예상치 못한 곳에 도착하여, 낯선 지점에 앉아 이마를 탁! 하고 때린다. ‘아! 인생은 단언할 수 없는 것들의 집합이구나.’

 고향 제주에서 이마를 때리고 앉은 나의 활동명은 ‘TALA(탈라)’. 폴리네시아어로 ‘이야기’란 뜻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그림, 글, 사진, 무엇이 되었든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었다. 섬 밖으로 나가고자 하는 열망이 섬사람의 본능이라면, 내 안에는 나의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꺼내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다. 그렇게 열망에 충실히 달리다 보니 어느새 제일기획 11년 차 카피라이터가 되었고, 또 다른 이야기의 부름에 이끌려 회사를 그만두고 발리로 향했다.

 보통 이런 식의 결정을 하는 사람들은 회사가 힘들거나, 일이 너무 과중하거나, 혹은 마음이 힘들었기 때문이라 말하는데, 나는 달랐다. 회사도 일도 즐거웠고, 직장 상사와 동료도 모두 좋았다. 퇴사 직전엔 우수 직원으로 뽑혀 관리 대상에 들어가기도 하였으니 업무 능력도 썩 괜찮았나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사를 하게 된 것은 이 모든 것보다 ‘서핑’과 ‘훌라’가 조금 더 좋았기 때문이다. 정말 조금. 아주 간발의 차. 그 아주 작은 차이가 내 인생을 완전히 뒤집었다.

 ‘서핑’과 ‘훌라’의 무엇이 그렇게 좋았길래 누군가의 인생을 뒤흔드는 거대한 사건이 될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해 간단히(?) 말하자면 ‘자연과 함께하는 경험이 어떻게 인간에게 자유를 선사하는가’라는 주제가 될 테고, 길게 말하자면 ‘평생에 걸쳐 나 자신을 미워하던 시간부터 사랑하게 되는 순간까지의 여정’이 될 것이다.

 위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먼저 필요한 과정이 있다. 바로 ‘서핑’과 ‘훌라’에 대한 오해를 푸는 것. 이 두 가지를 모두 경험해 보지 못했거나 아주 짧은 체험에 그친 사람들은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단편적인 그림만을 그 전체의 모습이라 생각할 수 있기에, 대표적인 오해를 몇 가지 먼저 풀고 이야기를 펼치고자 한다.

 


<서핑에 대한 오해>

#오해1

&nbsp;몇 년 전의 일이다. 양양에서 벌어지는 엄청난 파티들이 뉴스에 보도되며 ‘서핑을 하러 양양에 가는 사람은 걸러야 한다’라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서핑은 그들이 양양으로 놀러 오기 위한 핑계가 됐고, 본질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오해를 받게 되었다. 사실 한두 번 서핑을 체험한 사람을 우리는 ‘서퍼’라고 부르진 않는다. 서핑을 빌미로 이성을 만나고자 하는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nbsp;‘서핑’을 직역하자면 ‘파도타기’가 되겠지만, 실제로 파도 위에 올라서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내가 ‘서퍼’라고 부르는 이들은 아주 많은 기다림의 시간을 바다 위에서 보낸다. 스포츠라기보다는 명상을 하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온 우주에 파도와 나만 남은 것처럼 침잠하는 시간과 공간에서 내면을 마주할 여유를 얻는다.

&nbsp;참 이상하다. 서핑을 하다 보면 물질적인 것들에서 마음이 떠난다.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연이 허락해야만 성립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일까. 산도 땅도 바다도 전부 한 자리에 가만히 있는데, 파도만큼은 머무르지 않고 계속 변화한다. 밀당에도 신이 존재한다면 분명 파도의 신과 겸하고 있을 것이다.

&nbsp;파도가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없다. 지구 반대편의 작은 바람이, 작은 물결이 온 지구를 돌아 우리 눈앞에서 부서지고 우린 그 위를 달린다. 자연이 허락한 만큼만 할 수 있다. 서핑은 광란의 파티를 위한 핑계가 아닌, 우리가 지구와 교감하고 있다는 가장 구체적인 증거다.

#오해2

&nbsp;한국에서 서핑을 한다고 말하면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파도도 없는 곳에서 그게 무슨 서핑이야’라고. 그 말을 들을 때마다 화가 나기보다는 신기하단 생각이 든다. 어떻게 저 사람은 자신이 본 바다의 모습이 1년 365일 그대로일 것이라 생각하는 걸까. 물론 우리나라가 발리처럼 1년 내내 좋은 파도가 들어오는 곳은 아니지만, 사계절의 흐름에 따라 장소를 달리하며 좋은 파도가 들어온다. 그리고 처음 서핑을 시작할 때는 그렇게 큰 파도가 필요하지 않다. 파도는 생각보다 힘이 강하고, 해변이 아닌 바닷속에서 마주했을 때 훨씬 강렬하다. ‘물결’이라 하찮게 보던 것이 나를 덮치고 물속에서 굴린다. 그 위에 올라서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nbsp;서핑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나는 늘 여러 날과 계절의 바다를 가 보길 권한다. 단 하루나 한 계절의 경험만으로 서핑에 대한 감정을 단정 짓진 않길 바라기 때문이다. 바다에겐 생각의 가짓수를 훌쩍 넘는 여러 모습이 있고, 그중 어느 순간들은 강렬하게 우리를 사로잡는다. 날이 맑으면 햇살을 즐기고, 흐리면 감성에 빠지고, 비가 오면 흠뻑 맞으며 바다와 하나가 된다. 겨울 눈을 맞으며 서핑을 할 수 있는 건 사계절이 있는 나라의 특권이다.

&nbsp;좋아하는 웹툰 중 하나인 [가담항설]에 이런 대사가 있다. “사람은 그렇게 잠깐 보고 판단하는 게 아니야. 항상 좋아 보이는 사람 같은 건 없어.” “사람에 대한 평가라는 건 원래, 어떤 순간에 마주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거 아니겠어요?” 파도도 마찬가지다.

&nbsp;서핑에 대한 오해를 간단히 푸는 데만 해도 꽤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여기에 훌라에 대한 오해까지 정리하자니 너무 긴 시간이 걸릴 듯하여 이만 글을 줄이려 한다. 앞으로의 연재가 어떻게 이어질지는 모르겠으나, 기회가 된다면 훌라에 대한 오해도 풀고 서핑과 훌라, 그곳에서 연결되는 삶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먼 곳의 바람이 눈 앞의 파도를 만들 듯, 나의 글이 닿는 사람들의 마음에 자그마한 파도가 일어나길 바라며―

 

*이 글에는 <오늘의 파도를 잡아>(현혜원, 위즈덤하우스)에서 발췌된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