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방은 거부하면서 의과는 쓰는 의료계의 모순

2026-07-22의료정책황규석
양방은 거부하면서 의과는 쓰는 의료계의 모순

의학과 의료, 의사의 정체성 스스로 세우는 출발점

언어는 사고의 틀을 형성하고, 나아가 인간의 인식과 정신세계까지 지배한다. 같은 표현이 반복될수록 그 의미는 하나의 고정된 관념으로 굳어진다. 처음에는 편의를 위해 사용한 용어라도 오랜 시간 반복되면 그 용어가 전제한 구분과 관계를 자연스러운 질서로 받아들이게 된다. 용어 사용에 민감해야 하는 이유다. 의료계 역시 예외는 아니다.

현행 의료법은 의사와 한의사를 모두 의료인으로 규정하면서 각각의 임무를 구분한다. 의료법 제2조는 의사의 임무를 ‘의료와 보건지도’, 한의사의 임무를 ‘한방 의료와 한방 보건지도’라고 명시한다. 의료법 제5조도 면허 취득의 학문적 기반을 각각 ‘의학’과 ‘한의학’으로 구분한다.

법률상 명칭은 의사와 한의사이고, 학문적 기반은 의학과 한의학이다. 의사의 임무는 의료이고 한의사의 임무는 한방 의료다.

의료법은 의사를 ‘양의사’로 규정하지 않는다. 의사가 수행하는 의료를 ‘양방 의료’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한의사의 업무에 ‘한방’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의사의 의료에 그 반대 개념인 ‘양방’을 붙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양방’과 ‘양의사’라는 표현은 주로 한의계가 의학과 의사를 한의학과 한의사의 상대 개념으로 지칭할 때 사용해 왔다. 그러나 의사는 한의사의 반대편에 존재하는 ‘양의사’가 아니며, 의학도 한의학에 대응해 만들어진 ‘양방’이 아니다. 의료계는 이러한 표현을 용인해서는 안 된다.

다만 ‘의과’와 ‘한의과’라는 표현이 법령상 존재하지 않거나 위법한 용어라는 뜻은 아니다. 의료법은 ‘의과대학’과 ‘한의과대학’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도 협진사업과 건강보험 심사 등에서 ‘의과’와 ‘한의과’를 행정상 분류용어로 사용한다.

따라서 법령에 규정된 ‘의과대학’이라는 명칭을 부정하거나 정부의 공식 사업명과 고시 명칭을 임의로 바꾸자는 주장은 아니다. ‘의과·한의과’라는 표현 자체를 불법이라는 것도 아니다.

문제를 제기하는 지점은 따로 있다. 교육기관이나 건강보험 청구체계를 구분하기 위한 행정용어를 넘어, 의료계가 의사의 정체성과 의사의 진료 전체를 스스로 ‘의과’라고 부르는 관행이 과연 적절한지 돌아보자는 것이다.

‘의과’와 ‘한의과’를 병렬적으로 배치하면 의학과 한의학이 하나의 동일한 체계 안에 존재하는 두 개의 진료 분과인 것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의사와 한의사가 동일한 학문적 토대 위에서 서로 다른 과목을 담당하는 직역처럼 사회적으로 인식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의사면허와 한의사면허는 교육과정과 국가시험, 학문적 원리와 면허 범위가 구분돼 있다. 법원도 구체적인 행위가 면허 범위에 포함되는지를 판단하면서 의학과 한의학의 학문적 기초와 교육체계, 진단 및 치료 원리 등을 고려해 왔다.

‘의과·한의과’라는 표현을 사용한다고 해서 두 직역의 법적 지위나 면허 범위가 같은 선상에 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용어 하나가 법률관계를 바꾸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법률관계를 직접 바꾸지 않는다는 이유로 언어가 형성하는 인식까지 무시해서는 안 된다. 반복된 언어는 제도를 바라보는 기준에 영향을 미치고, 직역의 정체성과 업무 범위를 설명하는 방식에도 스며든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의과’라는 표현이 의료계 내부에서도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의사협회 상임이사회 회의자료에서도 의사의 진료 영역을 ‘의과’라고 표현하는 사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상임이사회에서 의료계가 왜 의사의 진료를 스스로 ‘의과’라고 부르는지 여러 차례 문제를 제기했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 제도에서 사용하는 분류를 그대로 따른다는 답변도 있었다.

행정적인 필요가 있다는 점은 이해한다. 의과와 한의과를 구분하지 않으면 수가와 심사, 의료기관 종별 관리에서 혼선이 발생할 수 있는 영역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행정 분류가 필요한 경우와 의사의 진료를 일반적으로 규정하는 경우는 분명히 구별해야 한다. 건강보험 청구나 공식 사업명을 인용할 때는 정해진 용어를 사용할 수 있다. 반면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의료계 단체가 자체적으로 작성하는 회의자료와 정책문서, 성명서에서 의사의 진료를 설명할 때까지 반드시 ‘의과’라는 표현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

학문을 말할 때는 의학과 한의학이라고 하면 된다. 직역을 말할 때는 의사와 한의사라고 하면 된다. 업무를 말할 때는 의료법에서 명시한 대로 의료와 한방 의료로 구분하면 된다.

보건복지부에도 분명히 요구한다. 법령상 고유명칭이나 건강보험 청구를 위해 불가피하게 사용하는 분류를 제외하고는 의사와 한의사의 학문적 기반을 ‘의과·한의과’가 아닌 ‘의학·한의학’으로 표현해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정책자료와 회의자료, 보도자료에서 학문을 구분할 때는 의학과 한의학, 직역을 구분할 때는 의사와 한의사, 진료행위를 구분할 때는 의료와 한방 의료라는 법률상 개념에 맞는 용어를 사용하기를 강력히 촉구한다. 의사의 진료를 의미하는 ‘의과’라는 표현을 관행적으로 반복해서는 안 된다.

이는 단순히 단어의 배열을 바꾸자는 요구가 아니다. 보건의료정책을 담당하는 보건복지부가 서로 다른 학문적 기반과 면허체계를 국민에게 정확히 설명해야 한다는 요구다. 행정 편의를 위해 사용되는 표현이 의사와 한의사의 면허 및 진료체계를 규정하는 일반적인 명칭으로 굳어지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의료계도 먼저 언어의 원칙을 세워야 한다. 회의자료와 정책자료, 성명서에 사용되는 용어를 점검하고, 의사의 진료 전체를 습관적으로 ‘의과’라고 부르는 관행을 재검토해야 한다. 의료계가 내부 문서에서 ‘의과’라는 표현을 계속 사용하면서 보건복지부에 의학과 한의학을 정확히 구분해 달라고 요구한다면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이는 ‘의과’라는 단어를 무조건 금지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법령상 명칭과 행정상 분류의 존재를 부정하자는 주장도 아니다. 의료계와 보건복지부가 의사의 진료와 의학을 표현할 때 어떤 용어를 사용해야 하는지 원칙을 세우자는 것이다.

학문은 의학과 한의학, 직역은 의사와 한의사, 업무는 의료와 한방 의료로 정확히 구분해야 한다. 의료계가 먼저 바로잡고, 보건복지부에도 이를 공식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정확한 용어를 사용하는 일은 사소한 말꼬리 논쟁이 아니다. 의학과 의료, 의사의 정체성을 스스로 분명히 세우는 출발점이다.